싸구려 시계를 살 때조차 알아야 할 것
서론
처음 시계를 산 게 작년입니다. 사회인이 되기도 했고, 휴대폰 중독을 끊으려면 휴대폰을 볼 이유를 줄이라고 해서 휴대폰 대신 시계를 보려고 하나하나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계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비싼 시계 하나 없는 사람이 푹 빠졌다니 이상하긴 합니다. 그래도 제 나름대로 시계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시계를 구경해 봤고 또 샀습니다. 이쯤에서 시계를, 정확히는 10만원대 이하 시계를 살 때 알아볼 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시계 업계에서 10만원이면 가격으로 쳐주지도 않는 초초저가입니다. 초초저가 시계라도 알아보고 사야 나중에 후회를 덜 하지 않겠습니까.
목적
시계를 왜 사는지 생각해봅시다. 저처럼 시간을 보기 위해서라면 가볍고 정확하고 배터리가 오래 가는 시계가 필요합니다. 군입대를 앞둔 사람이라면 충격과 물에 잘 버티는 시계를 사야 합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다면 당연히 멋진 시계가 맞을 것입니다. 시계를 사는 목적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실용, 패션, 과시입니다. 이중에서 과시는 패션과 비슷하지만 멋짐과 동시에 가격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목적입니다.(10만 원 이하 시계를 사면서 과시를 따질 필요는 없긴 합니다)
브랜드
시계를 잘 만드는 회사가 있고 못 만드는 회사가 있습니다. 유명한 회사가 있고 아무도 모르는 회사가 있습니다. 인지도 낮은 회사의 시계를 싸다고, 멋지다고 함부로 사면 안 됩니다. 1년 쓰고 버릴 거라 상관이 없다고요? 그 시계가 다음 주에 멈출지도 모릅니다. 다음 달에 오차가 1시간이 날 수도 있습니다. 물 한 방울에 꺼질 수도 있습니다. 알리익스프레스 등에 깔린 수많은 중국 브랜드 시계들. 그 시계들이 모두 나쁘진 않겠지만, 원한다면 시험해 보시죠.
인터넷에 브랜드를 검색해 보세요. 믿을 만한지 실제 여론과 리뷰를 찾아보세요. 카시오, 포체 같은 알려진 브랜드라면 이런 조사를 하지 않아도 되어 좋습니다.
그렇다고 비싼 회사 시계가 정교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몇 백만 원 짜리 시계들도 패션과 값어치에 집중해 정교함과 단단함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작동방식
시계가 움직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디지털, 아날로그는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이니 헷갈리지 마세요)
기계식은 말 그대로 기계, 즉 부품들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작동하는 시계입니다. 쿼츠식은 배터리로 가는 시계입니다. 기계식이 더 비싸고, 고급스럽고, 더 충격에 약합니다. 기술이 발전해서 이제는 쿼츠식이 기계식을 추월한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그 '간지'와 '로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기계식을 삽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실용적인 시계를 사신다면 단연코 쿼츠식을 사셔야 합니다.
무브먼트
차에 엔진이 있다면 시계에는 무브먼트가 있습니다. 무브먼트는 시계를 작동시키는 핵심 부품입니다. 무브먼트는 일본과 스위스에서 많이 만듭니다. 국산 시계도 무브먼트는 일본제인 것이 많습니다. 불매운동 하실 분들은 참고.
디자인
디자인이야말로 저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어떤 취향을 지녔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몇 가지 참고사항만 알려드리겠습니다(참고로 시계도 자본주의가 적용되는 제품입니다. 비쌀수록 멋지다는 말입니다).
1. 스트랩도 보기 - 스트랩도 엄연한 시계 부품입니다. 재질을 보세요. 땀이 많다면 가죽시계는 곤란할 수 있습니다. 시계 본체와 잘 조화되는지 두께 등을 보세요.
2. 손목에 찬 모습으로 따지기 - 시계를 책상 위에 늘어놓고 살지는 않으실 거죠. 손목에 감았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세요. 본인이 주로 입는 옷과 매치가 잘 되나요?
3. 여러 사진 찾아보기 - 실물을 차보는 게 확실합니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실 거라면, 되도록 다양한 사진을 보세요. 조명과 구도에 따라 같은 모델도 모습이 천차만별입니다. 조명을 너무 반사하지는 않는지, 컬러가 의외로 안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방수에 대한 오해
저한테는 지샥 GMA-B800가 있습니다. 지샥 홈페이지에 가면 미국 서퍼 말리아 마누엘이 찍은 광고를 틀어줍니다. 건강한 갈색 피부 서퍼가 지샥을 차고 수영하고 서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와. 저 모델 방수성능은 정말 대단한걸. 설명서를 보니 방수성능이 200미터라니.
방수성능은 m와 bar로 표현합니다. 1bar=10m입니다. 방수성능이 5bar라면 물 50m에 해당하는 수압까지는 버틴다는 소리입니다. '생활방수'는 3~5bar정도를 그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시계 방수는 믿을 게 못 됩니다. 시계는 물과 상극입니다. 물 한 방울도 시계를 죽일 수 있습니다. 물 30m를 버틴다구요? 물 틀어놓은 수도꼭지에 한 번만 대도 시계는 죽습니다. 생활방수는 손 씻을 때, 비 올 때 튀는 물 몇 방울 정도만 막아줍니다. 정말 물을 막고 싶으면 최소 방수성능 100m는 되어야 합니다. 저는 사실 100m도 못 믿겠습니다. 지샥을 찬 채 바다를 헤엄치던 광고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 그걸 재현하고 싶지가 않네요.
배터리
쿼츠식 시계를 사신다면 배터리 성능도 따져야죠. 이 점에서 카시오는 참 좋은 제조사입니다. 모든 모델의 배터리 수명을 적어놨으니 말입니다. 이것조차 적지 않은 시계 회사가 얼마나 많던지. 적어놓지 않은 시계들은 대략 1~2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카시오나 세이코 모델 중에는 배터리 수명이 10년이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마세요. 아무 기능도 쓰지 않고 가만히 버려두면 10년을 갈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알람도 쓰고 LED라이트로 밝히다 보면 수명이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10년 배터리 수명은 현실적으로 약 5~7년 정도 버팁니다.
게다가 그동안 소매점에서 보낸 기간도 고려해야 합니다. 전자시계는 제작하자마자 켜져서 출고됩니다. 여러분이 산 시계가 몇 년 동안 소매점에 켜진 채로 살았는지 모릅니다. 타이맥스 제품은 산 사람이 포장을 뜯고 작동시켜야 움직이기 때문에 이 점에선 공평(?)합니다.
기타
그밖에도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라이트가 잘 나오는지 알아보세요. 카시오는 ILLUMINATOR가 아닌 단순 LED라이트는 빛이 꽤 약합니다. 쇼핑몰은 어떤가요? 정품 보증서를 주나요? 병행수입하는 회사인가요? 병행수입 시계는 값이 싸지만 무상A/S 등 서비스를 포기해야 합니다. 날짜 표기 방식은 어떤가요? 오토 캘린더는 말 그대로 날짜를 다음 날로 알아서 넘겨주는 기능에 불과합니다. 오토 캘린더는 윤년을 모릅니다. 풀오토 캘린더는 미리 날짜를 다 입력해서(예를 들면 2099년까지) 윤년도 걱정이 없습니다.
마지막. 지름신
정말 사고 싶은 시계가 있다고 해 봅시다. 과연 이걸 사야 할까요? 시계가 이미 있는데? 시간은 휴대폰으로 보면 되는데? 이 돈으로 국밥이 몇 그릇인데?
비싼 시계나 시계라고 불리지, 싼 시계는 어디 가서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정말 사실 건가요?
사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보세요. 콩깍지가 씌인 걸 수도 있습니다. 아니라면, 한 번 사셔서 즐겨 보세요. 그리 비싼 시계도 아니지만, 하루 이상 만족을 주었다면 가성비는 이미 획득한 게 아닐까요?
'시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이 지샥 모음 (0) | 2021.06.26 |
---|---|
카시오 에디피스의 유혹 (0) | 2021.05.23 |